나의 이야기

원선재선생님을 뵙고

니이구 2008. 6. 12. 13:32

선생님 이장님

지난 일요일엔 고향인 여주의 시골에서 ‘면민의 날’ 행사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고향의 잘 알던 형님의 장례일도 그 날이라 겸사겸사 장지를 들렸다가 체육행사장엘 갔었다. 마냥 어리기만 하던 우리또래나 1~2년 선·후배들이 이제는 제법 희끗한 머리를 날리며 마을일들을 열심히 챙기고 있었다. 초등학교가 하나였던 면지역이라 면 전체를 아울러 선후배 관계라 분위기는 ‘정겨움’ 그 자체였다. 외지에서 회귀하여 본 나의 눈에만 그리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귀가시간까지 친구들과 어울려 추억을 안주삼아 소주잔에 회포도 풀고 선·후배들께 인사도 나누고 즐거운 하루였다.


뭐라 해도 그날의 나를 사로잡았던 감정은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셨던 분을 만난 것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잘 알아보지 못하셨지만, 나는 생애에 처음 만나신 선생님이셨던 분이라 잊을 수가 없는 분이다. 특히나 선생님의 동생이 나와 초·중학교 동창이기도 하여 길거리에서 가끔 만나기라도 하면 인사는 열심히 드렸던 분이다. 


그날따라 구부정한 허리에 모자를 쓰고 걸으시는 모습이 선생님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고 인사를 드렸다. 알고 보니 친구가 이장을 보는 옆 마을의 이장님이라신다. 그 동네 친구와 술잔을 나누면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의 옆 마을에서 이장을 보는 우리 친구가 있는데 면 전체에서도 알아주는 왈패란다. 위아래 없이 선후배 무시하고 언행을 하기도 하였는데, 선생님을 옆 동네 이장님으로 모시고 나서는 이장회의석상에서 조용하기도 하고, 담배도 가려피고, 사람이 됐단다.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면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 하나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유교사상이 뿌리가 깊구나 하는 것과 일생을 바쳐 인재양성에 헌신하시고도 퇴임 후에 마을을 위하여 봉사하시는 모습이 참으로 따뜻하고 아름답게 보였다는 것이다.


연금 등의 혜택으로 사시는 데는 지장이 없으실 텐데 왜 굳이 젊은이들의 궂은 모습을 보시면서 이장 직에 연연하시는지는 여쭤보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마을의 영원한 선생님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을 동료 이장님으로 인정해야하는 다른 마을의 이장들은 나이 들어서도 영원한 학생의 기분이 들리라. 또한 그 마을의 주민들도 영원한 학생 아닌 학생신분이 되는 느낌이리라. 다소간의 어색함도 있겠지만 정신적 지주이신 선생님의 뜻하시는 대로 범죄 없고, 미풍양속이 바로 서는 마을풍토가 자리 잡으리라 기대해본다. 선생님 ! 건강히 살기 좋은 고향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나도 훗날 직장을 떠나면 고향에서 이장이나 볼까나. 동네 분들이 허락해줘야 하는 난관이 있겠지만.  2008. 06. 11. 梨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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