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다. 디지털 TV를 시청하고, 나홀로차량을 타고 출·퇴근해서 컴퓨터로 업무 처리하는 것이 나와 같은 샐러리맨들의 일상이 되었다. 사람도 디지털인간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어려서부터 라디오를 들으며 자랐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대연각 호텔 화재사건’등을 라디오로 들으며 자랐고, 중·고교시절에도 늘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공부할 때도 라디오를 켜놓지 않으면 바깥의 온갖 소리에 정신집중이 안되어서였다. 그 시절만 해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밤 10시만 되면 “청소년 여러분 밤이 늦었습니다...”하면서 귀가를 종용하던 여자 아나운서의 잔잔한 목소리가 추억 속에 같이하고, 한창 팝송을 배울 때는 밤10시부터 모방송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라는 프로그램의 시그널뮤직이 한창 무르익던 감수성을 재려놓았었다. 구수한 DJ의 목소리와 올드팝송이 되어버린 그 시절 노래들이 밤하늘의 무수한 별빛사이로 흩어지는 모습은 지금도 나를 꿈꾸는 소년으로 이끌곤 한다. 이렇게 라디오를 켜놓고도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다. 허나 TV를 보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어렵다. 사고력은 아예 제로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개 요즈음 청소년들이 정신이 산만하고 짜증을 잘 내며 독선적이라고들 하면서, 원인은 TV와 컴퓨터 때문이라고 한다. 핸드폰과 DMB까지 나와서는 더욱 인간의 사고력을 옭아매는 느낌이다. 편리함으로 우리의 두뇌가 필요 없는 날이 올 것 같음은 나만의 기우만은 아니리라.
나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 늘 쳇바퀴 같은 일과의 시작이 되지만 왠지 그 복잡함을 나는 즐기고 있다. 학생들과 많은 사람들이 복잡하다고 짜증도 내고 하지만, 나는 마을버스가 나의 라디오 예찬과 같은 정겨움이 있다. 기동성을 필요로 하거나 무거운 짐을 나를 때만 승용차를 이용한다.
버스는 어려서부터 나의 추억이 실린 운송수단이다. 60~70년대 시골의 비포장 신작로(新作路) 자갈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던 버스는 등하교 10리길에 먼지를 일으켜 귀찮게 했고, 초등학교 2학년 때 난생처음 서울구경 갈 때, 여주에서 마장동까지 완행버스를 몇 시간 지루하게 타봤었다. 겨울에 평창의 외갓댁에 갈 때는 꼬불꼬불 눈 덮인 산길을 돌아가는 완행버스 속에서 나도 어지러운데 차멀미가 심하신 어머니 부축하느라 혼났었다. 그 때의 버스 삯은 기본요금이 아마 10원 내지 이십 원이었던 듯싶다. 추운 겨울의 등교길에 마음씨 좋으신 운전기사 아저씨라도 만나면 땡전 한 푼 없는 우리들을 태워 주기도 했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시내버스 기본 삯이 천원인데 공짜로 탔다가는 창피는 말할 것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격세지감이다. 차장 누나들의 “오라잇”하던 목소리가 오늘따라 그립다.
요즈음 기름값이 장난이 아니다. 음식값은 물론이고 서비스요금까지 천정부지(天井不知)다. 국민들이 불감증에 걸려도 보통 걸린 것이 아닌듯하다. IMF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또 ‘금 모으기’, ‘고철 모으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말도 헛구호만 되는 느낌이다. “왜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느냐.”고 하면 불편하단다. 당연히 불편하다. 기다리기도 해야 하고, 서서 갈 때도 있고, 허나 조금 참고 양보한다고 해서 결코 인생이 뒤지지 않는다. 버스에서 서로 자리양보하고, 내릴 때 기사분과 서로 “좋은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고 나면, 괜히 하루의 시작이 상쾌하다. 가끔 어느 운전기사분이 라디오를 틀어 줄때도 있다. 뉴스나 생활정보도 들어가며 버스를 타는 맛이 요즈음은 더 즐거운 느낌이다. 나홀로 차량에서 네비게이션의 지시대로 움직일 때는 모르던 풋풋한 묘미도 있다. 에너지 절약을 몸소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다. 퇴근길에 라디오나 한 대 사야겠다. 10시에 팝송이 나오는지 모르겠고, 디지털을 피하고 아날로그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 보수적이긴 하지만.
200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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