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선친 훈장

니이구 2008. 6. 12. 15:14
 

先親 勳章

며칠 전 顯忠日을 지나고 언론에서 弔旗 게양실적이 안 좋다고 叱咤를 하였다. 가정은 물론이고 가로기마저 정부에서 지시가 없었다하여 게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꼭 弔旗를 게양하고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해야만 護國英靈의 넋을 기리는 것은 아니지만, ‘報勳 의 달’이라 지정한 만큼 마음이라도 숙연했어야 하지만 그날따라 3일 연휴의 시작일이라고 도로는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으니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드는 것이 나만의 심정은 아니리라.


우리 집엔 국방군 시절의 정복을 입으신 先親의 흑백사진이 걸려있다. 담배 빨 주리만 있으면 맥아더 장군 사진과 흡사한 모습이다. 그 옆엔 先親의 花郞武功勳章과 훈장증서가 국가유공자증서와 함께 걸려있다. 평소에는 그냥 先親의 유품으로 보아 왔었지만, 요즈음은 씁쓸한 마음으로 한참을 들여다보고 또 읽어도 본다. 내가 아버지가 되어서 비로소 느끼는 심적 부담을 열배백배 느끼시며 가난 속에서 힘들어 하셨던 모습이 아련하다.


17세 어린 나이에 입대하셔서 10년이란 청춘을 바치고, 六二五때는 평안북도 강진까지 진격하시다 중공군에 밀리셨다는 말씀, 죽을 고비도 많이 넘기셨다는 말씀, 엄동설한에 100여명의 전우들과 솜바지저고리 군복을 입은 채 渡江을 했는데 생존자가 30명이었다는 말씀, 강원도라도 갈 때는 어르신들과 먼 산봉우리를 가리키면서 “저산자락에서 후퇴하다가 박격포가 무거워 땅속에 묻어두고 후퇴하였고, 나중에 찾아왔지.”등등의 전쟁담을 수없이 듣고 자랐다.  어릴 적 집 뒤꼍에 굴러다니던 鍮器로 된 周鉢과 대접이 있었는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이 밑바닥에 이승만 대통령의 銜字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것이 副賞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어 죄송스럽다.


22년 전인 1986년 겨울에 환갑도 못해 드시고, 쉰아홉의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회한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으니 바로 顯忠日이었다. 며칠 안 있으면 어머님의 칠순이시다. 관례대로 先親의 산소에 가서 제사를 올리고 옷 한 벌을 태워드렸다. 어머니 환갑 때도 해드렸던 일이지만, 왠지 가슴이 울컥하는 기분을 누를 길이 없었다. 고교 1학년인 아들이 顯忠日 白日場에 무엇을 주제로 할까 고민하기에 ‘할아버지 훈장’으로 하라고 제언하였더니 흔쾌히 응하였던 것이 괜스레 고맙다. 先親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이렇게 글로나마 당신의 마음을 위안하는 것 밖에는 없음이 안타깝다. 報勳의 달을 좀더 경건한 마음으로 되새겼으면 한다.

  2008. 6. 12  梨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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