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서 배우는 인생
며칠 전 저녁상 앞에서, 아내와 내가 언쟁으로 목소리를 높이자 문득 고1학년짜리 아들이 한다는 말이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남자는 나이 들수록 가정적으로 되고, 여자는 외향적으로 바뀐대.”였다. 우리부부는 언쟁을 그치고 그저 웃어 넘겼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벌써 아들이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에 나름대로 내 인생을 되짚어 본다.
나도 어릴 적엔 부모님의 부부싸움을 참으로 많이도 보아왔다. 평소에는 부처님같이 말없이 근엄하시던 아버님이 약주만 거나하시면 시작되는 그 일방적인 싸움에서 우리가족은 언제나 피해자였고, 어머니는 항상 패배자였다. 그래도 그 이튿날이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가는 집 분위기가 요상도 하였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많은 부분 이해도 되고, 그래서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원망은 없다. 워낙 없는 살림에 가족부양의 난제해결이 쉽지 않았던 그 시절의 고초가 이해되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 역할을 하다보니 오히려 예전의 아버님이 측은(惻隱)하기까지 하니 어쩌랴. 나는 그 시절 지금의 우리아들과 같이 자연스런 말 한마디 못하였으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가끔 마누라와 부부싸움을 하곤 한다. 결과야 당연히 ‘칼로 물 베기.’지만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그저 싸움의 내용도 없이 한참 서로에게 퍼 붇다가 결국은 나의 판정패로 끝난다. 나 혼자만 괜히 속상하지만서도 조용한 것이 좋으니까 어쩔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그 이튿날은 예전의 부모님들과 같이 언제 그랬냐는 식이다. 나는 사실 마누라를 내 식(式)으로 길들이고자 목적을 가지고 하는 싸움인데 번번이 결과가 신통치 않다. 정말로 아내가 남성화 내지는 외향적으로 바뀌었나보다. 이유야 나로 인해서든 세태에 물들어서인지는 모르지만. 특히 명절이나 집안의 큰 일이 있을 때는 부부싸움에 신중을 기한다. 집안 행사 분위기가 좌우되기 때문에.
혼인 후 초창기에는 부부싸움을 하거나 의사표현을 하면, 집사람이 그래도 나의 말을 못이기는 척 순응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들의 이야기에서처럼 내가 주장하는 부분은 어느 샌가 빙산의 일각이 되고, 아내의 말은 빙산의 숨겨진 부분처럼 도대체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고려 적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시시콜콜 따지고 들면, 가정의 평화와 이웃에서 쏟아질 질타 때문이라 자조(自嘲)하면서, 여지없이 내가 지고 만다. 나도 세상을 살다보면 잘하는 일만 있을 수 없기에 그냥 묻어두고 다음 기회를 노리게 된다. 이기는 그 날까지.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커서 부부싸움도 맘대로 못하겠다. 보는 눈이 예전과는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이 하는 말처럼 여자들은 기세가 등등해지고 남자들은 의기소침(意氣銷沈)해 질 수 밖에 없나보다. 아이들이 어느새 나의 스승내지는 조언자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잘하라는 잔소리 전에 부모들 언행의 주의가 선행되어야겠다는 느낌이 든다. 다음엔 또 아이들에게서 무엇을 배울는지 조심해야겠다. 이런 것이 바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2008. 2. 4 梨湖, 원고지 7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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