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구박(驅迫)

니이구 2008. 7. 11. 15:47
 

구박(驅迫)

재미난 말이다. 동음이의어를 보면 여물바가지도 구박이라 한다. 흔히 여물구박이라고 한다. 구박(驅迫)은 못 견디게 괴롭힌다는 뜻인데, 요즈음 술 때문에 마누라한테 구박을 맞다가 언뜻 재미있는 단어라 생각되어 적어본다.


지금이야 자녀들이 한 두 명이지만 예전에 우리가 어릴 적엔 가정마다 보통 대여섯 명의 자녀가 있었다. 자식들 중에는 말썽꾸러기도 있고 착한 아이도 있고 별의별 자식들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 중에는 유독 부모님에게 구박을 맞는 아이가 있었다. 일명 구박덩어리라 했다. 부모님들에겐 골칫덩이였던 구박덩어리가 나중에는 사회에서 출세하고 부모님에게 더 잘하는 경우가 종종 이야깃거리가 되곤 한다. 그러니 지금도 가정에서 구박덩어리가 있다면 무조건 서러워 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구박덩어리는 집에서 만의 경우가 아니고, 학교에서도 있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는 모두가 무지하게 가난했다. 학용품을 제대로 갖춰 등교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준비물을 못 해가면 교단 옆으로 나가 손들고 앉아 있어야 했는데 그 가정의 실상을 알면 가히 나무라기에는 찜찜할 정도였다. 그래도 혼 내키고 뒤돌아 씁쓸함을 되새기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비록 구박은 하였으나 선생님 자신을 더 구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코 찔찔이에 때 묻은 옷소매를 보다 못한 선생님이 위생검사도 하시고, 학교 앞 개울가로 반 아이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모래로 이빨을 닦게 하시던 기억도 새삼 떠오른다. 그럴 때는 모두가 구박덩어리였다. 그 불쌍한 아이들을 야단쳐야했던 선생님의 가슴은 얼마나 메어지셨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진짜로 구박 맞을 노릇이다.


예전엔 부모님에게서 구박을 받았지만, 이제는 마누라한테 구박받고 어떤 때는 아이들에게도 구박을 받을 때가 있다. 마누라한테는 내가 구박을 하기도 하지만 해봐야 결국은 왕구박이 되어 되돌아 올 뿐이다. 잔소리는 말할 필요도 없이 마누라의 전유물이다. 惡妻(악처)라는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를 더 유명한 철학자로 만들었다 한다. 남편을 구박하는 크산티페를 상상하면서 마누라의 잔소리를 듣고, 구박을 받으면 오히려 약이 될 성 싶다. 구박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자식들 공부 못한다고 구박도 말고, 오늘은 또 마누라에게 어떤 구박을 받을까 하면서 은근히 즐기는 것도 피서의 한 방편이 될듯하다.  2008. 7. 11. 梨湖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친유루(母親流淚)  (0) 2008.08.08
가을벌레소리....  (0) 2008.08.08
[스크랩] 담양군, 제9회 전국 가사·시조창작 공모전  (0) 2008.06.26
선친 훈장  (0) 2008.06.12
원선재선생님을 뵙고  (0) 2008.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