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末年始의 同行
며칠 전 자정 즈음 모처럼만에 가슴 찡함에 눈물샘이 자극되었던 일이 있었다. 중학생인 두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방송채널을 돌렸는데 ‘동행(同行)’이라는 논픽션이 방송되고 있었다.
엄마가 없는 어느 가난한 집에, 마흔 살의 아버지가 아홉 살 난 철없는 아들과 중증 장애를 가진 어린 딸을 힘겹게 부양하며, 낮에는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을, 밤에는 호두과자 난전을 하며, 때도 없이 시달려야 하는 경기(驚氣)에 지쳐 늘어진 딸과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삶의 굴레에 흐느끼는 힘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는 한참 가슴이 메었다. 어려서도 착하기만 했다는 그 아버지에게 너무나 가혹한 삶의 현실과 팍팍 도와 줄 수 없는 현실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또 다른 아버지의 입장에서 마냥 야속하기만 했다. 마지막에 그래도 시간을 내어 아들과 농구를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내심 그 농구공과 같이 팡팡 튀어 성공의 골대로 골인하는 일이 그 가정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많은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보며, 프로그램의 제목이 ‘동행(同行)’이라는 것에 공감이 갔었다.
또, 며칠 전에는 어느 교육장에서 동영상을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아 팔다리는 물론 언어장애를 안고 있는 미국의 릭 호잇(39)의 “달릴 때면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는 의사표시에 따라 아버지 딕 호잇(65)이 아들의 휠체어를 밀며 마라톤을 시작하게 되고,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50분의 기록으로 완주한 호잇 부자는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도전인 철인 3종 경기에서, 아들이 탄 보트를 매달고 3.9km를 수영하고, 다시 아들을 사이클에 태우고 180km를 질주하고는 아들의 휠체어를 밀고 42.195km를 석양을 향하여 쉬지 않고 달리는 모습이 우리의 눈물샘을 그냥 두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함께 해야만 가능하고, 또 꼭 같이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다. 해마다 다가오는 춥기만 한 연말연시를 맞으면서, 위의 두 이야기 외에도, 사회 분위기가 또 어려운 계층과 이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현대사회 구조는 가난의 대물림이 연속되는 고리가 얽히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 있다. 국민소득이 수 만 불이 된다한들,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혹자는 게으르기 때문에 그런 생활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라는 일정 범주 속에 사는 우리 인간에게는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도 사회적 강자는 극복을 하지만, 약자들은 숙명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적으로 아무리 온정을 베풀고 사회적 부조를 외친다 해도, 진정 느껴야할 사람들에겐 공허한 메아리로 되돌아오기가 일쑤인 것이다.
오늘은 관내 모 골프장에서 매번 때만 되면 수시로 해오던 큰 금액의 이웃돕기 성금 기탁 소식이 전해졌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 언론에 이웃돕기 기사가 부쩍 많아졌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하니, 훈훈한 소식들이 계속 전해지기를 바란다.
우리시는 물론 각지자체들의 공식적인 행사와 시책부터 시작하여 각 기관단체 내지는 독지가들의 많은 도움의 소식이 전해져 온다. 돕는 방식도 다양하다. 각종 바자회, 결연, 연탄 나눔, 김장 담가주기, 성금 및 물품 기탁, 일일찻집, 시설방문 등 많은 돕기가 있다. 어둡게만 비추어 지던 사회에 3.1독립만세운동의 기화로 독립운동이 세차게 일었던 것과 같이 전국에 어렵게 사는 이웃이 없어지는 날까지 영원하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시에서는 앞으로 대대적인 ‘사랑의 열차 이어달리기’ 행사가 있을 것이다.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니고, 자발적으로 온 시민이 십시일반(十匙一飯) 힘을 실어 실질적인 성과가 거양되기를 바래본다.
우리 전통사회를 지켜오던 향약(鄕約)의 강령 중에 환난상휼(患難相恤)이 있다.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며 살아오던 선조들의 체계화된 사회 규범으로 현재 한국이 있게 된 근간정신이기도 하다. 현재의 ‘이웃돕기운동’ 또한 강제성은 없지만 정(情)으로 뭉쳐 살아온 우리 대한국인의 자연스런 모습일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도 잊혀지지 않지만,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아가자’는 말뜻의 ‘동행(同行)’이라는 말로, ‘불우이웃 돕기’나 ‘소외계층 돕기’라는 당사자들에겐 조금은 거부감이 있을 수 있는 말을 대신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어려운 이웃들과 같은 하늘아래에 있으나 없으나 이질감 없이 ‘함께 살아가자’는 뜻의 ‘동행(同行)’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으면 한다.
‘동행(同行)’이라는 말은 ‘따뜻한 동행’, ‘아름다운 동행’, ‘행복한 동행‘이라는 말과 같이 수식어가 좋아야 말이 어울린다. 사람들이 갈망하는 좋은 세상에 조화될 수 있는 말이란 뜻이겠다. 우리의 연말연시가 한층 좋은 시간이 되리라는 희망을 얹어서, 전국민이 ‘동행(同行)’하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
2007. 11. 30. (京仁日報 11面) 梨湖 姜求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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