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덮치기

니이구 2008. 4. 24. 09:53
 

덮치기

눈 오는 날에는 덮치기가 생각난다. 지금은 그리 많았던 참새도 보기 힘들다. 특히 오늘같이 눈이 하염없이 날릴 때면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마음을 간질여 옴을 참을 수가 없다. 문밖에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먹이를 찾아 헤매는 멧새들을 잡으려 만들어 놓았던 덮치기를 꺼내들고 들판으로 헤매던 일들이 향수(鄕愁)가 되어 다가온다.


덮치기는 짚으로 엮은 두자쯤 되는 이엉조각을 활대의 바닥으로 삼고 가는 새끼줄로 망을 엮은 작은 활대를 중간에 설치하여 새가 먹이를 쪼아 먹을 때 자동으로 덮치게끔 만든 우리 어린 시절의 새잡는 도구였다. 그 당시는 들판에도 새 모이가 부족하였고, 눈 오는 날이면 더구나 그러했다. 참새 몇 마리 잡아 아궁이에서 구워 왕소금에 찍어 먹던 생각을 하면, 얼마 전까지 방송에 소개되던 ‘지구탐험대’의 한 장면에서 느끼던 감정과 겹친다. 그저 새 몇 마리 사냥에 흡족하던 그 시절 그 놀이가 소박하면서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 컴퓨터와 TV앞에서 사고력(思考力)을 열심히 지워내는 아이들에겐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가 어려운 부분으로 생각된다.


이번 겨울의 눈다운 눈으로 오늘의 함박눈이 처음인 듯하다. 어릴 적부터 느껴왔던 눈에 대한 감성은 거의가 포근함이었다. 공무원으로서 제설업무를 담당할 때는 정말 싫기도 했던 적이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늘 자연의 천성으로 여겨지는 눈 내리는 모습이, 나 자신의 마음처럼, 온 세상을 포근하게 하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감성을 앞세운다.


어릴 적의 눈 내리는 날엔,

눈사람도 만들고, 괜히 뽀드득 소리와 함께 걸어도 보고, 무작정 뛰어다니는 바둑이를 쫓기도 하고, 벙어리장갑과 고무신 속의 양말이 다 젖어야 안 방의 화롯가로 몰려들었다. 다 꺼져가는 화롯불에 고구마 익히느라 수시로 뒤집으면 안방은 온통 재투성이 됐다. 가래떡을 구어 먹을 때는 묻은 재를 열심히 털어댔고, 그럴 때면 할머님께서 ‘나랏님도 서말 재를 먹는다’고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선하고 재 묻은 가래떡을 많이도 먹었지만 지금까지도 건강에는 별 탈 없다.


조금 더 컸을 때 눈 내리는 날엔,

덮치기로 들판을 헤맸었고, 형들과 어울려 들짐승 발자국 따라 먼 산을 넘나들었다. 지나가는 여학생들에게 괜스레 눈덩이도 던져 보았다. 조무래기들의 아련한 추억이다.


언젠가는 정말 어느 소녀와 눈 덮인 들길을 걸었던 기억도 있고, 눈보라 속에 외딴 강원도 산골 외갓집에서 한길 가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 나오면서 얼어 죽을 뻔한 일 도 있었다. 눈 속에서 땔감으로 청솔가지를 찍어 지게에 지고 내려오며 수차례 미끄러지기도 하며 살아야 했던 어려운 날들이었지만, 눈 내리는 날이면 그래도 그리움이 앞선다. 모든 것이 내 삶의 일부였기 때문인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떠올리도록 만감(萬感)을 교차시키는 눈이 내리고 있다. 세상의 근심 많은 모든 이들의 걱정이 저 눈 속에 모두 사그라졌으면 한다. 갖은 액운이 저 눈송이처럼 펄펄 날아가 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새로운 꿈을 그려갈 수 있도록 은백색의 새로운 화선지로 세상을 덮어보자. 오늘의 눈을 그렇게 바라보고 싶다. 선비들은 예부터 백색을 좋아했다 한다. 꽃도 배꽃을 좋아했고, 자연의 풍치 중에서도 백설(白雪)을 좋아한다 했다. 취향이 비슷한 나도 선비가 될 수 있을까.   2008. 1. 22   梨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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