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성(易姓)
무자년(戊子年)부터는 민법이 개정되어 호주제가 폐지되고, 재혼관계에서 발생하는 자식들의 성(姓)문제와 관련하여 역성(易姓)을 허용한다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성(姓)은 인간을 인갑답게 하는 실체가 없는 기호체계이며, 우리나라의 족보체계는 세계적으로도 부러움을 사는 부분이다. 역사가 길다는 중국은 문화혁명당시 족보를 모두 소각하였다고 현지 여행가이드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 만큼 우리의 족보문화는 차후에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등록할 만한 가치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예전에 왕조가 바뀌는 것을 역성혁명이라 했다. 즉 왕조가 바뀌면 임금의 성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씨족세습이 관습화된 왕정이라 당연시 됐었다.
그 외에 말 그대로 역성(易姓)했던 일들이 보이는데,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면서 살기 위하여 성을 바꾸었다는 사실이 조선실록에 보인다. 구왕조로서의 불리함을 극복하고자 스스로 을 바꾸고 살아온 예이며, 살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또한 반상의 신분차별이 있던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신분 상승을 위하여 성을 바꾸기도 하였다. 그 외에는 함부로 성을 바꿀 수 없는 것이 불문율(不文律)로 여겨졌다. 금석맹약(金石盟約)과 같은 것에 확신을 주고자 하는 말 중에 ‘성(姓)을 갈겠다’라는 것이 있다. 그만큼 우리민족은 핏줄을 무척이도 소중히 여겼다.
우리 민족의 성(姓)에 대한 관념은 자연의 순리와도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 곧 부모자식관계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천륜(天倫)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즉 인위적으로 역성(易姓)을 한다는 것은 ‘동물의 왕국’에서 보여지는 금수(禽獸)들의 생존수단이라는 것이다. 자유나 평등의 논리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우리 민족의 뼈아픈 분단역사에서 이산가족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그 가족들은 왜 그리 간절히 가족들을 만나고자 애를 쓸까를 생각해 보자. 또한 계속되어지는 해외 입양동포들의 고국 부모를 찾는 애절한 사연은 왜일까. 모두 자기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또한, 성을 가지고 왕조를 표시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17대 대통령의 정부가 곧 탄생할 것이며, 현대판 역성혁명이 시작되었다. 언론에 고위 관료들이 많은 고민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결론이야 어찌 날지 모르지만, 조직개편이나 정책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부분임을 알면서도 기득권의 아쉬움이 있는 듯 보인다. 이렇게 역사와 함께하는 역성이야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호주제 폐지와 관련되어 시행되는 법에 따른 역성(易姓)은 좀 생각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민족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국사과목의 교육정책이 확대·수정되어야 된다고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을 상기하며, 새 법에 따른 부작용이 없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2008. 01. 04 수도일보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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