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대통령의 함자

니이구 2008. 1. 6. 15:13
 

대통령의 함자(銜字)

요즈음 언론이나 사회 통념상 대통령의 함자를 함부로 부르는 예가 허다하다. ‘⃝⃝⃝정부’니 ‘⃝⃝⃝정권’이라 함은 예사고, 항간의 어린아이들까지 스스럼없이 대통령 함자를 직접 거론하는 세상이다. 실정(失政)에서 온 결과이거나, 민주주의 사회의 자유·평등이 이런 것인지는 몰라도,  바람직한 상황은 아닌 것 같고, 전통에 배치되는 부분이 있는 듯하여 상기(想起)해보고자 한다. 봉건적인 사고방식이라 할지는 모르나, 국가에는 보이지 않는 질서도 있어야 함도 생각해 볼 일이다.

이름을 존중하던 예가 있는데, 임금이나 자신 조상의 함자에 쓰인 글자를 이름자에 사용하지 않는 관습이 ‘피휘(避諱)’이며, 휘(諱)는 원래 왕이나 제후의 이름을 일컫는 말이다. 국휘(國諱)는 왕의 이름을 피함이요, 가휘(家諱)는 집안 조상의 이름을 피함이며, 성인휘(聖人諱)는 성인의 이름을 피하는 것이다. 국가간 외교문서나 집안간의 서신 등에서도 ‘피휘’를 지켜 주었다. 왕의 이름에 쉬운 글자가 들어 있으면 나라 전체에 불편이 생기기 때문에 이름엔 잘 쓰지 않는 글자를 썼고 주로 외자로 이름을 지었으며, 고려왕조나 조선왕조의 휘(諱)에서 알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면, 진시황의 이름 정(政)자를 피하려고 정월(正月)을 단월(端月)이라 고쳐 불렀고, 한나라 경제의 이름이 유계(劉啓)였기 때문에 계(啓)자를 쓰지 않기 위해 이십사절기 가운데 계칩(啓蟄)을 경칩(驚蟄)으로 바꾼 예가 있다. 또한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성씨 이(李)와 소리가 같은 이(鯉)가 뜻하는 ‘잉어’를 먹지 못하게 되었고, 글로 쓰지 못하게 되자, 잉어를 이(鯉) 대신에 적선공(赤鮮公, 붉은 물고기님)이라고 고쳐 썼다. 삼국사기에서 김부식당 고조 이연(李淵)의 휘를 피하여 연개소문(淵蓋蘇文)을 천개소문(泉蓋蘇文)이라고 썼다. 조선 시대 대구의 한자 이름은 원래 ‘大丘’였으나 공자의 휘 ‘구(丘)’를 피하기 위해 ‘大邱’로 바뀌었다. 자주사관에서 보면 사대적이라 볼 수도 있지만, 국가 기강유지의 불문율이기도 하였다.


이름자의 항렬(行列)도 무시되고, 4촌 형제도 멀다고 느끼는 이 시대에 고루하게 ‘피휘’를 지키자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도 ‘피휘’는 아니더라도 부모님 이상의 조상 함자(銜字)를 언급할 때는 ⃝라고 하거나 자(字)나 호(號)를 불러주는 것이 통례다. 지자체나 대학교 등을 대표자의 이름자를 넣어 ‘⃝⃝⃝정부’식으로 부르는 예도 없다. 회사나 관공서 내에서도 상사의 나이가 어리다 해도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예는 없다. 직위를 불러주는 것이 통상적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부하직원들 이름도, 아주 친하지 않는 한 함부로 부르지 못하여 직책을 불러주는 분위기인데, 유독 대통령의 함자만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거론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잘났건 못났건 국민의 선택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인데 말이다. 설명하기 어렵고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다.


정권도 새롭게 탄생하는 마당에 전직대통령이나 이후 대통령도 직위를 붙여 ‘⃝대통령’으로 불러주는 것이 국민된 도리가 아닐까 한다. ‘⃝⃝⃝정부’라고 대통령 함자를 붙이던 말은 이전의 ‘문민·국민·참여·혁신정부’라 부르던 것과 같이 부르던가, 헌법 1조에 명시된 공화국(共和國) 명칭을 사용하여 예전의 ‘1·2·3...공화국’이라 함은 어떨까. 국가에서 해주는 것만을 바라지 말고, 국민들이 국가가 잘 돼가도록 힘을 모아주는 성숙된 사회를 만드는 차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선을 창건한 태조와 무학대사의 대화 중에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내가 존경받고 우리국민 스스로가 존경받는 사회가 되려면, 우선 상대방을 존경하는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인데, 하물며 상대방이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임에랴. 4만불의 소득으로 물질적으로는 외형적인 선진국의 모습은 갖춘다 해도, 정신적인 성숙도는 어찌 이룰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직 수행시에는 대통령과 국민이 서로 존경하고, 정 안되면 헌법에 보장된 탄핵제도를 활용하는 성숙된 국민이 되었으면 한다.


2008. 1. 6  梨糊  강구인 (용인시 홍보협력담당 010-3786-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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