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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구인 용인시 홍보협력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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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戊子年) 새해가 되었고, 새 정부가 탄생할 것이다. 대통령 당선자의 중요 공약 중에 새로우면서 대대적인 운하건설이 있다. 항간에선 불가론을 피력하고, 청계천 등 현장행정을 성공시킨 당선자 측에선 강행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정책의 결론이야 나중에 보여질 것이고, 내 고향 여주와 관련된 부분이기에 운하 경유지인 남한강 고향 나루터의 추억을 그려본다.
우리 고향 여주는 남한강이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분지지형으로 여주쌀은 왕백(王白)이라 해 수라상에 오르는 진상미일 정도로 곡창지대이기도 했다. 한 마지기 단위가 예전 도량형으로 150평인 바 다른 지역의 200~300평에 비해 옥답이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수운이 중요시되던 예전에는 한강의 4대 나루 중 조포나루와 이포나루가 있었다. 조포는 지금의 신륵사 부근으로 여주 도자기 축제 현장이기도 한 그 동네를 아직도 조포라 한다. 이포는 나루대신 이포대교가 교통체계의 명맥을 잇고 있다.
또한, 조포에서 2km 쯤 상류지역인, 내가 살던 고향 동네는 이호(梨湖)나루가 있었다. 현재의 42번 국도가 우리 동네를 지나고 있고, 여주대교가 놓이기 전인 60년대 초까지는 나룻배를 볼 수 있었다. 버스나 트럭을 배에 싣고 건넜고, 헌병검문소와 조그마한 구멍가게와 땜장이 아저씨의 집이 있었으며, 미루나무들이 늘어서 있던 것이 기억난다. 나름대로 정겨운 나루터의 풍경이었다. 길게 늘어진 뗏목을 타고 내려가는 벌목꾼들의 모습도 보았었다. 뗏목 행렬에 대해서는 그 당시의 강물이 운하역할을 했던 것이다. 지금이야 이호대교가 놓인 자동차 전용도로가 우리 동네 상류부분을 통과하고, 또한 나루터에는 전원주택이 지어져 있어 금석지감(今昔之感)이다.
그 나루터 주변이 우리들의 어릴 적 동네놀이터였다. 동네 사람들이 그 강물을 길어다 식수로 먹고 살 정도로 깨끗한 시절이었으니, 여름이면 물장구 치고 징거미, 자라, 게, 동자개 등 물고기를 잡고, 파란색의 물총새를 보면서 자랐다. 팔당댐을 막고, 오염으로 얼룩진 지금은 모두 사라진 풍경이 됐다.
하류지역을 위한 일방적인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발전이 요원한 지역인데, 새 정부 공약사항에 운하개발이 거론되고 있다. 개발에 찬·반 의견이 분분하고, 모든 사업에는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에 맞는 그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또한 도외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운하개발이 국민적 공감대 속에 추진이 된다면, 수운이 주를 이루던 예전의 조포와 이포나루 외에도 지나는 주요 마을마다 나루터가 설치되고, 화물운송뿐만 아닌 관광용 등 다목적으로 고려되었으면 한다. 내륙 운하개발로 다시금 여주 나루터들이 역세권을 형성해 지역적으로는 르네상스를 맞는 여주 남한강의 기적이 있었으면 한다. 아울러 여주에서 얼마 전 고려시대에 건립되어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자취를 남겼던 남한강변의 청심루(淸心樓) 복원 발기대회가 있었다. 운하건설에 맞춰 꼭 건립되어 경기도의 역사적인 명물로 자리했으면 한다.
자연은 원시상태로 보존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발압력에 휘둘리고 있는 바에야 인류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모처럼 낙후지역인 시골 사람들이 정책개발의 의미를 느끼려는데 마냥 보존만을 위한 개발반대론으로는 이해시키기가 곤란할 것이다.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으로 확신한다면, 국민들을 모두 이해와 설득으로 함께 나아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대형 역사인 운하건설과 함께, 이념적으로도 이왕이면 국민이 대통합되는 상징적인 물길로, 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창조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